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쌔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 사도행전 7:17-29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가까워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합니다. 모세가 태어나 버려져 왕궁에서 성장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이 발생하자 미디안 광야로 도주합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메세지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기 시작한 것, 모세가 유아 말살 정책으로 강에 떠내려가 바로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의협십으로 죽인 것.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것. 그런 모세가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출애굽한 것.
전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보여주는 오늘 말씀입니다.
제겐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스토킹 사건입니다. 고소를 해도 문제, 제가 참고 인내해도 문제, 현재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2년 간의 분노와 혈기를 다스리는게 얼마나 고역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죄로 인한 사건이고 그 사람도 그리고 나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고생하고 수고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속사적인 생각이 가득한 저는, 어차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니 지금이라도 짓밟아 뿌리를 뽑아 내야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삶에 임하니 평안과 평강은 가당치도 않고, 제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만 가득한 스스로의 모습을 직면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가족과의 소통에서도 그러고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를 묻고 갈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묻고 느끼며 내 삶을 ‘해석’하며 나아가는 것,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내게 주어지는 감정과 상황들에 초점을 맞춰 오롯이 ‘해결’ 하려고만 합니다. 스토킹 사건도, 가족 구원 과정도, 이성 관계들도 전부 해석하며 나아가야하는데 참 그것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뒤좌우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 저를 던져놓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며 인내하는 능력을 키워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면 주시는 훈련의 과정을 잘 받아야하는데, 특히 스토킹 사건과 관련되어 요즘 드는 생각은 그냥 법적으로 책임을 묻고, 정 교회에 다니는 것이 힘들어진다면 교회를 옮기면 되는거 아닌가? 가족들 손 붙잡고 차라리 다른 교회로 가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듯 나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다시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출애굽합니다. 책임감 없이 도망가면 결국 다시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또 도망가거나 회피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