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 ‭‭사도행전‬ ‭5‬:‭27‬-‭32‬

끌어다가 세운 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끌고”, 이 대지 제목의 “끌어다가”는 같은 의미.

똑같이 반복되는 그 상황은 나를 사명으로 이끄는 것. 내가 원치 않게 끌려간 그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해야 함.

김성우 목사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마주치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심.

단순히 죄인이라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 옆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임.

즉, 공동체와 나에게 붙여주신 베필과 같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

당장 때려치고 싶어도 공동체에게 나누고, 베필에게 나누고 가야한다.

앉은뱅이는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 증인임. 우리는 살아내어 증인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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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인정해야 한다.

모든 분란은 인정하지 못하는 나 때문임. 내 어두운 모습을 직면하고 인정하는게 굉장히 고통스러움.

사랑받기 위해 연기하는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이 아니라, 진짜 모습은 오해 받기 쉽더라도 내가 경험한 것을 증언하고 나누는 것이다. 안정적인 공동체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