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 사도행전 4:32-37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 사도행전 5:1-11
믿는 무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공유합니다. 밭과 집이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둡니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거짓말로 성령을 속였다가 죽고 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자발적 현신은 마음과 뜻을 소유가 아닌 사명에 둘 때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또한 이 사명은 주께 받은 은혜를 깨닫는 만큼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너무나 정답같은 말의 나열이 저를 힘들게 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소유가 아닌 사명이 중요한건데, 이 당연한 말이 마치 나를 짓누르는 무게처럼 부담감을 줍니다. 누가 과연 온전히 100%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게 가족 구원의 사명이 있습니다. 불신자 집안에서 말씀이 먼저 들린 사람으로써 누나와 어머니를 교회에 꼭 모셔야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살고자 다녔던 교회가 이제는 가족 구원까지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혼자 거룩해지기도 힘들어죽겠는데 왜 가족들까지 신경써야하는거지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가족 전도를 하다보면 스스로 생각하지 못 했던 저의 죄도 보게 되니 가족 구원이 곧 내 구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소유가 아닌 사명. 다행히 물질에 대한 큰 욕심은 없지만, 가만히 묵상해놓고 보면 저도 소유욕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제대로 안 할 때도 많고, 욕심에 비싼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그러한 돈과 시간이 가족 구원에 쓰였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지만, 내 열심으로 가족 구원이 이루어졌으면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그리고 인도하시면 내 일, 욕심 그리고 가족 구원까지 가능한 것입니다. 100% 사명다운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신경써야할 것은 “내가 과연 사명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오늘도 지은 죄 평범성으로 가볍게 보는게 아니라 회개하고 나아가고 있는가.” 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유만 놓고 보더라도, 소유에는 돈과 재산 뿐만 아니라 시간도 있습니다. 기도와 예배에 내 시간을 잘 내어드리고 있는지 묵상해보면 가끔 귀찮고 힘들 때 속성으로 기도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진정 내가 기도에 내 열심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