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 사도행전 2:14-212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 서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셔서 남녀, 늙은이와 젊은이 모두가 예언하고 환상과 꿈을 보게 될 것이라 전합니다.
저는 피와 불과 연기의 사건에서 주의 이름을 절반만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 피와 불과 연기의 사건은 더욱 심해진 스토킹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가족 구원입니다. 사실 이 사건들만 놓고 보면 피와 불과 연기의 사건은 아닙니다. 버틸만 했었기 때문입니다. 스토킹은 무시하면 그만이고, 가족 구원은 내 거룩도 신경을 못 쓰고 있는데 “가족들은 나중에~”라며 미루어도 아무도 뭐라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진정 피와 불과 연기의 사건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입니다. 그 사건들 가운데 순종이랍시고 가만히 있는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스토킹에서는 분노와 혈기가 올라오고, 가족 구원에서는 억울함과 옛날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그렇게 공황 장애가 오고 팔다리가 분질러지는 영육이 망가지는 사건이 찾아오고 나서야 조금씩 제 의를 내려놓는 제 자신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한 평생 느껴보지 못 한 무기력감이 밀려옵니다.
공동체에 요청하여 어머니가 다른 목장에 배정되셨고, 새로운 어머니의 목자님과 통화하여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목장에 가지 않겠다 선언하셨습니다. 결국 길고 긴 설득 끝에서야 가시겠다고 하시고는 여러 조건들을 거십니다. 자신을 픽업하러 오지 않으면 목장에 가지 않겠다 하시는 등 여러 조건들을 거시는 모습을 보고 치가 떨렸습니다. 그래도 목장에 몇 번 가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뜻하신 바대로 이끄시겠지 하며 속으로 참을 인을 몇 번이나 그렸는지 모릅니다. 내 힘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대하니, 목장에 가겠다 하셨습니다. 누나 사건도 비슷한 꼴이였습니다. 내 의를 내려놓으면 내 생각과 정반대로 일이 잘 풀려갑니다.
내 힘이 빠질 수록 불안합니다. 어찌보면 이상합니다. 내 힘을 들이지 않는데 알아서 잘 되면 얼마나 편합니까. 하지만 저는 오히려 내 인생에 대해 통제권을 잃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보면서 불안을 느낍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이것은 무슨 일의 단초일까? 고민만 하다가 하루가 끝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제 판단과 생각을 점철합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절반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 공허함과 무기력감을 주님으로 채워야할 것 같은데 교과서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는 현재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반드시 채워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어야 하는데 잘 되지를 않습니다.
내 기도가 부족한걸까요? 내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부족한걸까요? 얼른 신교제, 신결혼해서 믿음의 가정을 이뤄내고 싶은 생각도 이제는 저 편으로 아지랑이 피듯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상태가 많이 위험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 수록 기도해봐야겠단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생각이 그칩니다. 하루종일 갈팡질팡합니다. 이런 아수라장같은 제 마음에 단비처럼 떨어질 말씀이 내일 큐티에는 있길. 말씀이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