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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공동체와 말씀으로 바로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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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 에베소서 5:22-33

내용 요약


사도 바울은 아내들에게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 합니다. 또한 남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부부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신비라고 설명합니다.

질문


묵상


결혼을 한 번 갔다와보니 세상 행복을 쫓는 결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그리고 저를 교회로 불러주시는 사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행복을 쫓아 했던 결혼에서 상대가 외도했다며 몰아세우고 마음을 들어주려 하지 않고, 품어주려 하지 않고 사건 해결에만 급급했던 제 모습을 돌이켜봅니다.

맺어진 짝, 하나님이 허락하신 관계, 믿음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 더더욱 노력해야하는 그 막중한 책임감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혼 사건 속 저를 최선은 다했지만 책임감이 있진 않았다고 스스로 표현합니다. 교회에 와 주님을 만나고 불신이었을 때의 결혼을 돌아보니, 당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씀과 공동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냥 무미건조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왜 교회에서 신교제와 신결혼을 강조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제 이상형은 굉장히 안목적인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말씀으로 해석되고 시간이 흐르고 보니 굉장히 심플하게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공동체에 물으며 갈 수 있는 사람, 예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일말의 안목적인 부분도 남아있는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교회에 와서 믿음의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신교제와 신결혼을 희망하게 되었는데,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헛된 세상 것들보다는 적어도 구원을 위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생각으로 바뀐 부분은 주님께서 제 마음을 만져주셨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요즘 내려놓고 순종하는 적용들을 시키십니다. 실제로 순종하고 내려놓으니 제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는데, 이는 나의 열심과 의로 나를 가득채워 왔었기 때문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공허함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이성관계로 채우려고 한다면 스스로든 상대한테든 더 큰 화를 불러올거라 생각이 됩니다. 이 내려놓음의 순종의 때를 결혼의 목적을 세상 행복에 두는 것이 아닌 거룩한 구원에 들기 위한 것임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훈련의 과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은혜와 교회의 사랑으로 살아났음을 그리고 내가 나아가는 방법임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지금 불안/공황 장애로 직장에서 조금씩 휘청이고 있지만 그 감사함을 기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