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 사사기 20:18-28
사사기 전체의 교훈은 끔찍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앉아야 한다. 언제 하나님 앞에 앉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 2만 2천명이 죽음. 이스라엘이 질 수 없는 전쟁이었음. 그러나 결과는 대참패.
이스라엘은 인정할 수 없었음.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을 것임. 그러나 불평과 불만과 억울함은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는 문제임을 알아야 함.
자기의 생각과 뜻이 부정 당했을 때, 불평과 불만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다. 뿌리는 내 문제다.
자기가 전부 다 결정해놓고, 의미 없는 물음을 함. 누가 먼저 선공할지를 물어보았음.
중요한 문제인 결혼 상대, 식장, 살림 다 정해놓고 언제 결혼할까요 부모에게 물어보는 꼴.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겠습니까, 회개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물어봤어야 했음. 이스라엘은 물어보는 행색만 갖추고 다 정해놓고 물어봄. 이것은 거만하고 교만한 행위임.
거만과 교만으로 슬슬 풀리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에게 무시 당하는 것이다. 실패는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다.
나는 답을 다 정해놓고 교만하게 행색만 갖춘 하나님의 뜻을 묻는 척했던 적이 있지는 않았을까?
공동체와 지체에게 물어보는 것이 하나님을 내 앞에 두는 적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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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군대가 많았더라도 압도적인 힘이 남아있었던 이스라엘. 전열을 다 갖춰놓고 벧엘로 올라가서 기도함. 애통한 눈물이 아니라 억울하고 서러운 비장한 심정으로 울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