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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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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찐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 사사기 6:25-40

내용 요약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바알 제단을 허물고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이에 기드온이 그대로 행하고, 기드온은 하나님께 양털과 이슬로 표징을 구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확신을 주십니다.

질문


묵상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도 눈으로 보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 기적들을 봤음에도 기드온은 하나님께 두 번이나 양털과 이슬로 표징을 보여달라, 확신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옛날 이 말씀을 처음 보았을 때, 그렇게 많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셨는데도 왜 이렇게 의심을 할까? 나라면 그렇지 않을텐데 “등신같은 기드온”이라 욕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에 붙어 말씀들을 계속 듣다보니 기드온이 나보다 훨씬 낫구나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5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 후 상대의 외도로 6개월만에 이혼한 사건, 믿었던 사람에게 처절히 배신당한 사건, 삶에 낙담해 수면제로 자살시도한 사건 전부 하나님이 저를 불러주시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의 성공만을 쫓아 가족보다는 나의 거듭남이 중요했고, 그러면서도 부모님들이 만든 불안정한 이혼 가정이 아닌 안정적인 나만의 울타리를 세우겠다는 이중적인 가치관 속에서 이기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음란을 행했습니다. 나는 이제 깨끗하다며 영적 교만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글로 더 적기도 어려운 수많은 죄들과 나의 그릇됨에서도 아무런 댓가없이 저를 사랑으로 불러주셨고 양육해주셨습니다. 처참히 무너져 자살시도까지 했던 저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 누구한테도 마음을 못 열겠다며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저를 공동체를 통해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가족 전도도 하루 아침에 누나와 어머니가 교회에 등록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같은 예배당에서 찬양하고 말씀 듣는 뭉클하고 눈물이 맺히는 순간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기드온이 양털과 이슬로 표징을 구하여 실제로 그 기적을 봤듯, 제게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적을 본 기드온이 확신에 차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과 다르게, 어제 주일예배 말씀처럼 계속 의심하고 계산했습니다. 순종의 끝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순종하지 않았을 때 내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지? 순종의 결과가 나의 종말이면 어떡하지? 겁을 냈습니다. 그 결과는 불순종과 말씀을 저로 포장하며 합리화하면서 정신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보여주셨던 제게 기적과도 같은 양털과 이슬들에도 여전히 겁내고 계산하고 의심했습니다.

지금까지 뭐든 계획하는대로 그리고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내 힘과 내 판단으로 달성하고 해결하며 살아왔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고 기적을 보았음에도, 세상 사는대로 해보니 불순종의 과정에는 평안이 없었고 그 결과지 또한 제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직접 당해보고, 찢어지게 아파도 보니 순종이 결국 본질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황/불안장애가 찾아와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상비약을 먹어야 했고, 높은 곳에 떨어져 팔 다리에 염좌가 생기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순종하기 싫어 계산하고 염려하며 내 의를 세우려고 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