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사게가 드디어 일어 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찌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찌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이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 열왕기하 18:28-37
우리는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 히스기야를 조롱하는 랍사게. 28절부터 랍사게의 두번째 연설이 시작된다.
히시기야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실 것이라고, 앗수르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말함. 랍사게는 대왕 앗수르의 말씀을 들으라,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하며 심리전을 펼침. 성경 말씀을 교묘히 섞은 앗수르 왕의 말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군인들을 동요하게 만들었을 것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과 같이 포도주와 떡, 꿀이 있는 지방으로 이사시켜주겠다며 달콤한 말을 속삭임. 앗수르의 이주 정책은 피정복민을 핍박하고 정말 잔인한 정책임. 즉, 앗수르 왕이 말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
한편으로는 두렵게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게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외침임. 하나님을 떠나고 싶게 만듬. 외침이 클 수록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커짐. 두렵게 하고, 부럽게 되는 것은 속음이다. 말씀보다는 앗수르 왕의 말처럼 힘, 지위, 능력, 재력 등을 더 우선시하는 것은 이와 같음이다. 우리는 앗수르 왕처럼 되길 원하는 죄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외침에 쉽게 속는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악함과 욕심으로부터 우리를 반드시 건지실 것임. 우리는 우리의 악함과 교만과 욕심을 직면하고 회개하며 나아가야 함. 속을 수 밖에 없는, 건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건짐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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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는 그 당시 사마리아 대부분을 점령한 강대국임. 히스기야 앗수르로부터 독립 선언을 했기 때문에 앗수르가 침공한 것임. 앗수르는 정복을 통해 포로, 인질, 땅, 돈을 얻음. 또한 영적으로 교만 또한 얻음. 모든 신들을 다 대적할 수 있다는 교만을 얻은 앗수르 왕. 여호와를 나에게 굴복한 민족 신들과 동급 취급하며 이스라엘을 여호와가 건져올려주셨냐며 무시하고 조롱함.
교만한 환경은 사람 상황마다 다를지언정,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본래부터 주어진 죄성임.
교만의 증거는 칭찬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순간, 도덕적으로 퇴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도덕적 면죄부 효과. 나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내 선택을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점검하는 능력이 퇴보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혼하고, 퇴사하고, 내 멋대로 하는 것이다.) 자기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칭찬도 욕구다. 계속 채우려고하지만 결국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만 받으려고 하는 욕심으로 발전하면, 하나님이 뭘 아냐며 대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교만한 사람은 눈이 멀어 자기가 건져올리심 받아야할 사람이라는 것도 망각한다. 하나님 조차도 내 머릿속에 두고 싶어하는, 즉 자기 자신이 높아지려고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 앗수르가 어떻게 예루살렘을 건지실 수 있어? (하나님에 대한 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