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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마 5:3-10) (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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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마태복음 5:3-10
우리는 복을 참 좋아한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런데 그 복의 내용은 거의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주님은 그냥 복도 아니고 팔복에 대해 말씀하신다. 나를 살리는 회개 후에 성화를 넘어 영화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복의 개념이 거듭나야한다. 그 복의 개념은 무엇일까?
성경 전체를 요약한 말이 팔복이다.
성경 = 십계명 = 팔복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더 넓게 광휘의 펼쳐짐으로 그 복을 설명한 것이 십계명, 더 간단하게 팔복, 팔복을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이다. 이것만 알아도 성경을 잘 아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가난은 재정적 가난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함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가난 : 웅크린 거지의 모습, 의지할 곳이 없는 나사로의 모습, 두 렙돈을 바친 과부의 모습에 쓰인 가난.)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 괴롭힘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 겸손하려고 하지 않아도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사람 = 가난한 자.
돌아온 탕자 말씀에서 아홉 단계를 거치는 둘째 아들 이야기.
그런데 아직도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것이다. 굶주려 죽지 못하고 그래서 다들 자살하는 것이다.
내가 아직 쓰러질만큼 주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못 한다. 하나님은 내가 힘을 잃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끝까지 가난해지실 때까지 기다리신다. 답답한 환경이 원수가 아니다. 그 환경에서도 내려지지 않는 욕심과 교만이 원수이다.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려고 기다리시는 분이다.
가난하고 애통한 환경으로 몰아가시는 것이 복이다. 물질, 애정 등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가난은 무엇일까? 그 가난이 주님이 나를 이끄시는 방법이라는 것이 믿어지나?